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하는 네 복음서가 들어 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같은 예수를 증언하지만 사건을 배열하는 방식과 강조하는 주제가 서로 다르다.
복음서는 현대적인 의미의 전기와 같지 않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면서도 그분이 누구이며 십자가와 부활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공동체의 신앙 안에서 해석하는 문서이다. 네 복음서를 함께 읽으면 예수에 관한 공통된 기억과 각 복음서 저자의 고유한 관점이 동시에 드러난다.

복음서라는 말의 뜻
‘복음’은 헬라어 유앙겔리온(euangelion)에서 나온 말로, 좋은 소식 또는 기쁜 소식을 뜻한다.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소식과 그 소식을 전하는 선포를 가리킨다.
복음서는 처음부터 네 권의 책을 가리키는 제목으로 사용된 말이 아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예수에 관한 복음이 먼저 구두로 선포되었고, 그 전승이 여러 지역의 공동체 안에서 전달되었다. 이후 기록된 문서가 형성되면서 ‘마태에 따른 복음’, ‘마가에 따른 복음’과 같은 표현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복음서는 네 명의 저자가 서로 다른 네 가지 구원 소식을 만든 책이라기보다, 하나의 복음이 네 가지 증언과 서술 방식으로 전해진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의 전승
예수의 활동 당시 그분의 가르침과 사건은 주로 말로 전달되었다. 예수는 갈릴리와 유대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고, 제자들과 군중에게 비유와 짧은 격언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그 가르침과 행적을 공동체 안에서 반복하여 전하였다.
초기 공동체의 관심은 예수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존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예수의 말씀은 예배와 선교, 공동체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시 전해졌다.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관한 전승은 공동체의 선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러한 전승과 자신들이 이용한 자료를 바탕으로 각자의 문서를 구성하였다.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는지, 여러 자료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세부적인 견해 차이가 있다. 그러나 네 복음서가 오랜 구두 전승과 공동체의 신앙적 해석을 거쳐 형성되었다는 점은 널리 논의되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이스라엘의 성취로서의 예수
마태복음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역사와 성경의 약속을 완성하는 메시아로 제시한다. 책의 첫 부분에 아브라함에서 다윗을 거쳐 예수에게 이르는 족보가 놓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수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분리된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그 역사 안에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로 묘사된다.
마태복음에는 구약성경의 말씀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예수의 탄생, 이집트로의 피신, 갈릴리에서의 활동, 예루살렘 입성 등을 이스라엘 성경의 약속과 연결한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가르침을 긴 담화 형식으로 정리하는 특징도 보인다. 산상수훈은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이다. 예수는 율법을 폐기하는 인물이 아니라 율법의 뜻을 깊이 드러내고 완성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마태복음 마지막에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이 나오며,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주제가 온 세상을 향한 선교로 확장된다.
마가복음: 고난받는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은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다. 문장이 빠르게 이어지고 사건 전환이 잦으며, 예수의 활동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과 십자가를 향해 진행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마가복음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면서도 그 정체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로 그린다. 제자들은 예수의 능력을 목격하지만 그분이 어떤 메시아인지 충분히 깨닫지 못한다. 예수는 영광스러운 왕으로만 나타나지 않고, 거절과 고난을 겪는 메시아로 제시된다.
이 복음서에서 제자도를 이해하려면 십자가를 통과해야 한다. 예수를 따르는 일은 권력과 명예를 얻는 길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섬기는 길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부활을 말하면서도 독자가 제자들의 실패와 두려움을 기억하게 한다. 그 긴장 속에서 독자는 예수를 따르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마주하게 된다.
누가복음: 가난한 사람과 이방인을 향한 구원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부터 예루살렘에서의 죽음과 부활까지를 넓은 역사적 흐름 안에서 서술한다. 예수의 사역은 갈릴리에서 시작되지만, 이야기의 중심 방향은 예루살렘을 향한다. 누가복음에 이어지는 사도행전에서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여러 민족에게 전파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누가복음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여성, 세리와 죄인처럼 사회적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예수의 사역 안에 자주 등장시킨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잃은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본문이다.
누가복음에서 성령과 기도도 중요한 주제이다. 예수는 기도하는 인물로 묘사되며, 성령은 예수의 사역을 이끄는 힘으로 나타난다. 이 특징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하나의 연속된 작품으로 읽게 하는 중요한 연결점이다.
요한복음: 말씀이 사람이 된 사건
요한복음은 앞의 세 복음서와 서술 방식이 크게 다르다. 예수의 비유와 행적을 전하는 방식보다 긴 대화와 상징적인 표징을 통해 예수가 누구인지 설명한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한 말씀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을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과 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표현은 예수의 기능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하나님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드러낸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기적을 주로 ‘표징’이라고 부른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 나사로를 살린 사건과 같은 표징은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것은 예수가 누구인지 가리키는 표지이며, 독자가 믿음으로 응답하도록 이끄는 사건이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서와 다른 연대와 표현도 보인다. 예를 들어 성전 정화 사건의 위치와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 방식이 다르게 서술된다. 이런 차이는 한 복음서의 사실성을 부정하기보다, 각 저자가 예수의 생애를 서로 다른 신학적 목적에 따라 구성했음을 보여 준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서로 비슷한 순서와 내용을 많이 공유한다. 세 복음서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공관복음서’라고 부른다. ‘공관’은 함께 본다는 뜻이다.
마가복음의 상당 부분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나타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마가복음에 없는 예수의 말씀과 이야기들이 공통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마가복음과 별도의 예수 말씀 자료가 사용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다만 이러한 자료의 실제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며, 복음서 형성 과정에 관한 가설에는 여러 견해가 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 공유하는 사건이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언어가 다르다. 공관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선포에서 중심적인 주제로 나타나는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영생, 생명, 믿음, 빛과 어둠 같은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두 전통이 서로 무관한 것은 아니다. 두 전통 모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신앙의 중심 사건으로 증언한다.
네 복음서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
네 복음서의 차이는 서로 모순되는 기록이 있다는 뜻으로만 이해할 필요가 없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의 삶에서 무엇을 강조할지 선택했고,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구조로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마태복음은 예수와 이스라엘 성경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가복음은 십자가를 향하는 예수의 길과 제자도의 대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누가복음은 구원의 범위가 사회적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모습을 강조한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정체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은 상징 언어로 해석한다.
복음서를 읽을 때 네 문서를 하나의 평면적인 연대기로 합치려고 하면 각 문서의 고유한 목소리가 약해질 수 있다. 각 복음서가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배열하며, 어떤 표현을 반복하는지 살피면 예수에 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증언이 훨씬 풍성하게 드러난다.
네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네 개의 독립적인 신앙 증언이다. 마태복음은 성경의 성취와 메시아 예수를, 마가복음은 고난받는 하나님의 아들을, 누가복음은 모든 사람을 향한 구원을,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된 예수의 정체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복음서와 기독교 신앙
기독교 신앙은 추상적인 교리에서 시작하지 않고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에 관한 증언에서 출발한다. 복음서는 이 사건들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그 의미를 해석한 문서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를 읽는 일은 예수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작업을 넘어 초기 공동체가 예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고백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네 복음서는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니지만 하나의 중심을 공유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고, 사람들을 부르며 치유와 용서를 베풀었고,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부활하였다고 복음서는 증언한다. 네 복음서의 차이와 공통점을 함께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증언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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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더 읽을거리
- Raymond E. Brown, A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 Martin Hengel, The Four Gospels and the One Gospel of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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