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경은 처음부터 한 권의 책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경전 전통,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 초기 교회의 예배와 읽기 관행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지면서 오늘의 성경 목록이 형성되었다.
‘정경’은 신앙과 예배에서 권위 있는 성경의 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스어 카논(κανών)은 본래 자와 기준을 뜻하며, 교회에서는 어떤 문서가 성경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정경은 책을 새로 만든 목록이 아니다
성경의 정경 형성을 이해할 때 교회가 어느 날 회의에서 책들을 임의로 골랐다는 그림은 정확하지 않다. 각 문서가 기록되고 복사되며 공동체에서 읽히는 과정이 먼저 있었고, 그 권위에 대한 인식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었다. 지역 교회마다 받아들이는 범위가 완전히 같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정경 목록은 이러한 사용과 논쟁을 확인하고 경계를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정경 형성에는 문서의 기원, 사도와의 연관성, 교회의 예배에서의 사용, 신앙의 기준과의 일치가 함께 작용하였다.
구약성경의 배경
예수 시대의 유대 사회에는 히브리어 성경에 해당하는 경전 전통이 이미 존재하였다. 오늘날 유대교에서 타나크는 토라, 느비임, 케투빔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토라는 모세오경이고, 느비임은 예언서이며, 케투빔은 시편·잠언·욥기와 같은 성문서를 포함한다.
예수와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경전을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하였다. 신약성경에는 ‘율법과 선지자’라는 표현이 나오며, 누가복음 24장에서는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이 언급된다. 다만 당시 유대교의 모든 공동체가 경전의 목록과 배열을 하나의 방식으로 사용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원전 3세기 이후에는 히브리어 경전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이 번역 전통을 칠십인역이라고 부른다. 칠십인역에는 히브리어 성경에 포함된 책들 외에도 오늘날 가톨릭에서 제2경전으로 부르는 문서들이 함께 전승되었다. 이 문서들의 범위와 권위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에 따라 달라졌다.
예수와 사도 시대의 성경
예수와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기의 성경은 오늘날처럼 한 권으로 묶인 형태가 아니었다. 회당에서는 율법과 예언서가 읽혔고, 여러 경전 문서가 두루마리 형태로 보존되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도 이스라엘의 경전을 읽으면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해석하였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예수의 정체성과 교회의 사명을 설명하였다. 동시에 예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도 공동체의 권위 있는 전승으로 자리 잡았다. 바울의 편지는 여러 교회에 전달되어 회람되었고, 베드로후서 3장 15~16절은 바울의 편지들을 다른 성경과 함께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절이 신약성경 전체의 완성된 목록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신약성경 27권의 형성
신약성경은 복음서 네 권, 사도행전, 바울서신 열세 편, 히브리서, 공동서신 일곱 편, 요한계시록으로 구성된다. 이 27권이 처음부터 모든 지역 교회에서 같은 권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복음서와 바울의 편지가 널리 읽혔다. 2세기 중반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주일 예배에서 사도들의 회고록과 예언서가 읽힌다고 기록하였다. 이는 복음서가 이미 예배와 교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특정 문서의 권위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졌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와 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지역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속도가 달랐다. 반대로 오늘날 신약성경에 들어 있지 않은 문서들도 일부 공동체에서 읽혔다. 그러나 예배에서 읽힌다는 사실과 정경으로 인정된다는 사실은 언제나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마르키온과 정경 논쟁
2세기의 마르키온은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구별하고, 누가복음의 일부와 바울서신 열 편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문서 모음을 사용하였다. 교회는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마르키온의 주장은 교회가 어떤 문서를 권위 있는 성경으로 읽는지 더 분명하게 표현하게 만든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정경이 마르키온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한 번에 완성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이다. 복음서와 바울서신의 사용은 그 이전부터 널리 진행되고 있었다.
무라토리 목록과 아타나시우스의 편지
2세기 후반 또는 3세기 초로 추정되는 무라토리 단편은 초기 라틴 교회에서 사용된 신약 문서 목록의 하나이다. 문서의 보존 상태가 완전하지 않고 일부 책의 포함 여부를 둘러싼 해석도 있지만,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여러 바울서신 등이 언급된다. 이 목록은 당시 교회가 신약 문서의 범위를 논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가 부활절 서신에서 제시한 목록은 오늘날의 신약성경 27권과 일치한다. 이 목록은 27권의 권위를 처음 만들어 낸 선언이라기보다, 그리스어권 교회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던 문서들의 범위를 분명하게 제시한 기록으로 이해된다.
서방 교회에서는 히포 공의회와 카르타고 공의회가 성경 목록을 다루었다. 이 회의들은 오늘날의 신약 27권을 포함한 목록을 제시하였지만, 동방과 서방의 모든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확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구약 목록이 교단마다 다른 이유
오늘날 기독교 교단 사이에는 구약성경의 범위에 차이가 있다. 개신교 성경의 구약은 일반적으로 유대교의 히브리어 성경과 같은 39권으로 배열된다. 유대교의 타나크는 같은 내용을 24권으로 세지만, 이는 사무엘서·열왕기·역대기와 같은 책을 한 권으로 묶고 열두 소예언서를 한 권으로 세는 배열 차이이다.
가톨릭 성경은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와 에스더기·다니엘서의 일부를 포함한다. 가톨릭에서는 이 문서들을 제2경전이라고 부른다.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외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교단과 성경 판본에 따라 별도의 부록으로 수록되기도 하였다.
동방 정교회는 구약의 범위에서 가톨릭과도 차이가 있다. 정교회 내부에서도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 지역 전통에 따라 수용하는 목록과 예배에서의 사용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기독교 성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어느 교단의 성경 목록을 가리키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경과 외경의 구별
외경은 본래 ‘감추어진 것’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하였지만, 시대와 전통에 따라 가리키는 범위가 달라졌다. 개신교 전통에서는 보통 구약과 신약의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유대교·초기 기독교 문서를 넓게 가리킨다. 가톨릭이 제2경전으로 부르는 책들도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모든 외경이 같은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토빗기와 마카베오기는 제2성전기 유대교의 역사와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지혜서와 집회서는 지혜 문학의 전통을 보여준다. 복음서 형태를 가진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등은 신약성경과 가까운 시대에 작성되었지만, 정경 27권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이 곧 문서의 역사적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오래된 문서라는 사실만으로 정경적 권위가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문서의 연대뿐 아니라 사도적 전승과 예배적 사용, 신앙의 내용 등을 함께 고려하였다.
정경을 판단한 주요 기준
- 사도적 연관성: 문서가 사도 또는 사도들과 가까운 증언 전통과 연결되는지 살폈다.
- 신앙의 일치: 교회가 전해 온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구원에 대한 신앙과 조화를 이루는지 검토하였다.
- 보편적 사용: 여러 지역 교회에서 예배와 교육을 위해 널리 읽혔는지 확인하였다.
- 고대성: 사도 시대와 가까운 시기에 형성된 문서인지 고려하였다.
이 기준들은 모든 시대와 지역에서 동일한 공식 절차로 적용된 것은 아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각 기준이 서로 얽혔고, 교회 지도자와 공동체의 판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정경은 기독교 신앙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경은 성경을 단지 오래된 종교 문서의 모음으로 보는 관점과 다르다. 기독교에서 성경은 교회의 신앙과 예배, 설교와 교육을 판단하는 기본적인 증언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성경의 권위를 설명하는 방식은 교단마다 다르다.
가톨릭은 성경과 성전, 교회의 가르침이 서로 분리된 세 권위 체계라기보다 하나의 신앙 유산 안에서 이해된다고 본다. 정교회도 성경을 교회의 예배와 성전 안에서 읽으며, 성경과 교회의 전승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 성경의 최종적 권위를 강조하는 전통을 발전시켰지만, 개신교 안에서도 성경 해석과 교회의 역할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성경의 정경은 한 번의 회의에서 완성된 목록이 아니다. 여러 세대의 공동체가 문서를 읽고 보존하며 예배에서 사용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또한 구약 목록은 교단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모든 기독교 성경이 완전히 같은 목차를 가진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의 성경을 읽는 방법
성경의 정경이 형성된 역사를 알면 각 책의 문학적 성격과 시대적 배경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증언하며, 사도행전은 초기 교회의 확장을 기록한다.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은 특정 공동체의 질문과 갈등에 답하면서도 여러 교회에서 읽히는 문서가 되었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떨어진 두 문서집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가 이스라엘의 경전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해석한 관계 속에서 함께 묶였다. 동시에 각각의 책이 기록된 시대와 장르, 저자의 목적은 서로 다르므로 모든 구절을 같은 방식으로 읽을 수는 없다.
기독교 성경의 정경은 신앙 공동체가 무엇을 기억하고 예배하며 가르칠 것인지 보여주는 역사적 경계이다. 그 경계의 형성 과정에는 유대교의 경전 전통, 사도적 증언, 초기 교회의 예배와 논쟁, 교단별 전승이 함께 작용하였다. 이 과정을 이해할 때 오늘의 성경은 하늘에서 완성된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보존되고 읽히며 권위를 인정받은 문서들의 모음으로 더 정확하게 다가온다.
더 읽을 책
- Bruce M. Metzger —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Its Origin, Development, and Significance
- Lee Martin McDonald — The Biblical Canon: Its Origin, Transmission, and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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