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었다는 기독교의 핵심 소식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교회의 가르침이나 개인의 종교적 감정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회복하신다는 사건의 선포가 복음의 중심이다.
한국어 ‘복음’은 한자로 복된 소식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서 복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유앙겔리온(euangelion)이며, 승리나 왕의 즉위처럼 공동체 전체에 알려야 할 소식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복음은 네 권의 책을 가리키는 이름인 동시에, 그 책들이 전하는 구원의 소식 자체를 뜻한다.

복음이라는 말의 뜻
고대 세계에서 좋은 소식은 개인의 기분을 바꾸는 소문과 달랐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 새로운 왕이 즉위했다는 소식, 도시의 안전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처럼 공동체의 현실을 바꾸는 공적 소식이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복음이라고 불렀다.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위해 올라가는 방법을 먼저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다가오고,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사람을 구원하며,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신다는 소식을 먼저 선포한다. 이 때문에 복음에는 명령보다 앞서는 사건과 약속이 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였다
마가복음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였다고 전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지리적으로 구분된 영토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며 악과 죽음에 맞서고, 인간과 세상을 회복하는 통치를 뜻한다.
예수의 선포에서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받아들이는 응답이다. 회개는 잘못을 인정하는 감정에 머물지 않고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돌리는 일이다. 믿음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는 행위이다.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기독교에서 복음은 윤리적 교훈이나 종교적 원칙의 목록이 아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특정한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말로만 선포하지 않고 병든 사람을 고치고, 죄인으로 여겨진 사람을 받아들이며, 악과 죽음에 맞서는 행동으로 그 나라를 드러냈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 죄의 용서, 병과 귀신으로부터의 해방, 공동체에서 밀려난 사람의 회복은 하나님 나라가 인간의 삶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는 자신의 권위로 죄를 용서하고 안식일과 정결에 관한 기존의 해석에 도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드러냈다.
십자가는 왜 복음의 중심인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로마 제국이 반역자와 중범죄자에게 시행하던 공개 처벌이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고, 이 사건은 당시 기준으로 수치와 패배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를 예수의 사명이 실패한 장면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이 예수의 죽음을 통해 죄와 악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신 사건으로 해석한다.
신약성경은 십자가의 의미를 여러 방식으로 설명한다.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희생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는 사건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또한 폭력과 죄의 실체를 드러내면서 사랑과 순종을 끝까지 실천한 사건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 표현들은 서로 경쟁하는 하나의 공식으로 환원되기보다 십자가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부활은 복음을 확정하는 사건이다
십자가만으로는 기독교의 복음이 완성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고 선포된다. 부활은 예수가 단지 훌륭한 스승이나 비극적인 순교자로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켜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사명을 확증하였다는 의미를 가진다.
부활은 죽은 사람이 언젠가 영혼으로 살아남는다는 일반적인 위안과 다르다.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예수의 몸과 존재가 죽음을 통과하여 새 생명으로 일으켜졌다는 데 초점을 둔다. 이 믿음은 마지막 때에 창조 세계와 인간의 몸도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과 연결된다.
바울이 설명한 복음
바울은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과 나타나심에 관한 소식으로 요약한다. 그는 이 내용을 자신이 새로 만든 사상이 아니라 앞서 전해 받은 전승으로 소개한다. 이 요약은 복음의 핵심이 예수의 도덕적 모범만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 사건에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 서신에서 복음은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게 하신다는 소식과도 연결된다. 의롭다 하심은 사람이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올바른 관계 안에 받아들이신다는 뜻이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민족적 경계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복음과 네 복음서의 관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네 문서이다. 이 네 문서를 가리켜 복음서라고 부르는 것은 각 문서가 복음이라는 소식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복음’이라는 말 자체가 네 권의 책과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네 복음서는 예수의 정체성과 사명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보여준다. 마태복음은 유대 성경과 예수의 관계를 강조하고, 마가복음은 고난받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강하게 드러낸다. 누가복음은 가난한 사람과 주변부에 놓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넓게 보여주며, 요한복음은 예수를 생명과 계시의 근원으로 깊이 묘사한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
복음을 믿는다는 말은 어떤 명제를 머리로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수가 주이며 하나님이 그를 죽음에서 일으켰다는 소식을 받아들이고, 그 소식에 맞추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믿음은 예수와의 관계, 죄의 용서, 세례, 새로운 공동체의 삶과 함께 이해되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화해와 섬김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복음이 인간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도덕적 프로그램이라는 뜻은 아니다. 새로운 삶의 실천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라기보다, 이미 선포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된다.
복음의 범위와 의미
복음은 개인이 죽은 뒤 천국에 간다는 약속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과 창조 세계를 회복하기 시작하셨다는 소식이다.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해는 복음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 결과는 새로운 공동체와 정의로운 삶, 그리고 창조 세계의 회복을 향한 소망으로 확장된다.
복음은 과거에 일어난 예수의 사건을 전하는 동시에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기다리게 한다. 십자가와 부활은 이미 이루어진 구원의 근거이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아직 기다리는 미래이다. 기독교인은 이 두 시간 사이에서 복음을 믿고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과 섬김을 공동체의 삶으로 나타낸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여셨다는 소식이다. 네 복음서는 이 소식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증언하고, 바울의 편지와 다른 신약 문서들은 그 의미를 공동체의 삶과 신앙 안에서 풀어낸다. 복음의 중심은 인간의 종교적 성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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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더 읽을거리
- Greg Gilbert, What Is the Gospel?.
- John Stott, The Cross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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