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로, 기독교 예배와 개인 기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본문 가운데 하나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관계에서 시작하여 하나님 이름의 거룩함,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일상의 양식, 죄의 용서, 시험과 악에서의 보호를 차례로 구한다.
주기도문이라는 이름은 예수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직접 드린 기도라는 뜻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라는 의미에 가깝다. 본문은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두 복음서의 형태에는 길이와 표현에서 차이가 있다.

주기도문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마태복음에서 주기도문은 산상수훈의 일부로 등장한다. 예수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경계하면서, 많은 말을 반복해야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주기도문은 이 가르침 뒤에 이어지는 모범적인 기도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뒤 주기도문이 나온다. 누가복음의 본문은 마태복음보다 짧으며, 도입부와 몇몇 청원의 표현도 다르다.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각자의 문맥에 맞추어 전승하였다는 사실이 두 본문의 차이에 반영되어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아버지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기도하는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지만, 하나님을 인간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축소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통치를 함께 가리킨다.
“우리”라는 말도 중요하다. 주기도문은 개인의 필요만을 위한 독백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양식과 용서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양식과 용서를 구하는 사람으로 서게 된다.
주기도문의 일곱 청원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명성과 정체성, 세상 가운데 드러나는 통치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기를 구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고 그분을 합당하게 예배하기를 바라는 청원이다. 인간의 명예를 높여 달라는 기도와 방향이 다르다.
2.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 나라는 특정한 영토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상태와 그 통치가 실현되는 질서를 가리킨다. 예수의 사역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은 미래의 소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청원에는 현재와 미래가 함께 들어 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악과 죽음이 최종적으로 극복될 미래도 기다린다.
3.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청원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계획보다 앞세운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표현은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뜻이다.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를 추상적인 관념으로 남겨 두지 않고 인간의 현실과 연결한다.
4.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와 거룩함을 말한 뒤 일상의 양식을 구한다. 이는 영적인 필요만 중요하고 물질적인 필요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먹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일도 신앙의 기도에 포함된다.
“일용할”로 번역된 표현은 해석이 쉽지 않다. 오늘 필요한 양식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다가오는 날을 위한 양식 또는 필요한 양식이라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어느 해석을 따르더라도 이 청원은 과도한 축적보다 날마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태도와 관련된다.
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태복음의 표현은 빚을 탕감한다는 말과 죄를 용서한다는 뜻을 함께 품고 있다. 누가복음은 죄와 빚을 서로 다른 표현으로 사용한다. 고대 사회에서 빚은 생존과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였으므로, 용서는 내면의 감정만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청원은 하나님의 용서와 인간이 서로 용서하는 삶을 연결한다. 마태복음은 주기도문 뒤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문제를 다시 설명한다. 이는 인간의 용서가 하나님의 용서를 돈으로 사는 조건이라는 뜻이 아니라,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용서받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6.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시험은 하나님이 사람을 악으로 유혹한다는 뜻이 아니라, 믿음을 무너뜨리는 시련과 유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이 청원은 인간이 스스로 모든 상황을 이겨 낼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고, 신앙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보호받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7.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마지막 청원은 악이라는 추상적인 힘에서 보호해 달라는 뜻과 악한 자에게서 보호해 달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주기도문은 인간의 삶에 죄와 악의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의 마음만이 아니라 악에 의해 훼손된 삶 전체를 향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
| 항목 | 마태복음 6장 | 누가복음 11장 |
|---|---|---|
| 문맥 | 산상수훈과 올바른 기도에 대한 가르침 | 제자의 요청에 대한 응답 |
| 형식 | 더 길고 정돈된 형태 | 더 짧은 형태 |
| 도입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아버지 |
| 양식의 표현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
| 용서의 표현 |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
이 차이는 어느 한 복음서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초기 공동체에서 암송되고 전승되었으며, 복음서 저자들은 각자의 독자와 문맥에 맞는 형태로 기록하였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주기도문은 대체로 마태복음의 긴 형태를 바탕으로 한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많은 교회가 주기도문 마지막에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송영을 붙인다. 그러나 이 문장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는 마태복음 사본들에는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후대의 예배 전통에서 기도문을 마무리하는 찬양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송영은 주기도문의 내용과 어울린다. 기도가 인간의 필요를 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고백하며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다만 성경 본문에 포함된 부분과 교회의 예배 전승에서 덧붙여 사용된 부분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초기 교회와 오늘의 주기도문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주기도문을 정기적으로 암송하였다. 1세기 말의 문헌인 디다케는 주기도문을 하루 세 번 외우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이는 주기도문이 개인의 묵상문을 넘어 공동체의 생활 리듬을 형성하는 기도였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를 비롯한 여러 전통은 주기도문을 예배와 성례, 개인 기도에서 사용한다. 번역과 송영의 포함 여부, 예배에서 낭송하는 위치는 교단과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일상의 필요와 용서, 악에서의 보호를 함께 구한다는 중심 구조는 널리 공유된다.
하나님을 높이는 청원에서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구하고, 양식과 용서와 보호라는 인간의 필요로 나아간다. 이 순서는 신앙과 생활, 예배와 윤리를 서로 분리하지 않는다.
주기도문이 보여 주는 기도의 방향
주기도문은 기도를 자신의 소원을 늘어놓는 행위로 규정하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이 누구인지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구한 뒤, 인간에게 필요한 양식과 용서와 보호를 구한다. 이 구조 안에서 개인의 필요는 무시되지 않지만 더 큰 하나님의 통치 안에 놓인다.
또한 주기도문은 기도와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양식과 용서를 함께 구하며, 시험과 악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한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요약한 문장이면서, 공동체가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생활의 기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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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achim Jeremias — The Lord's Prayer
- N. T. Wright — The Lord and His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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