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케나지, 세파르디, 미즈라히는 유대교의 교파를 나누는 명칭이 아니다. 이 말들은 유대인 공동체가 오랜 세월 살아온 지역과 그곳에서 형성된 언어, 음식, 음악, 예배 방식, 법 전통을 가리키는 문화·역사적 구분이다.
오늘날 유대인은 하나의 지역이나 단일한 생활양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유럽의 아슈케나지 공동체, 이베리아반도에서 북아프리카와 오스만 제국으로 이동한 세파르디 공동체,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둔 미즈라히 공동체는 서로 다른 경험을 간직하면서도 토라와 유대교의 공통 전통을 공유한다.

아슈케나지는 중부·동부 유럽의 유대 공동체이다
아슈케나지라는 말은 중세 히브리어 전통에서 독일 지역을 가리키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명칭은 독일과 라인강 주변을 거쳐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중부·동부 유럽에 형성된 유대 공동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대표적인 전통 언어는 이디시어이다. 이디시어는 중세 독일어를 바탕으로 히브리어와 아람어, 슬라브계 언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모든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이디시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며, 지역에 따라 독일어·폴란드어·러시아어 등 주변 언어를 함께 사용하였다.
아슈케나지 전통의 유대교 생활에는 독자적인 예배 발음과 기도 선율, 법 해석의 관습이 발전하였다. 오늘날 정통파 공동체에서 널리 사용하는 아슈케나지 히브리어 발음은 성서 히브리어를 읽는 여러 전통 가운데 하나이다.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히브리어의 발음이 세파르디 전통을 바탕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공용 발음과 아슈케나지 회당의 발음 사이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세파르디는 이베리아반도에서 형성된 유대 전통이다
세파르디라는 명칭은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스파르드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였으며, 중세 이후 이베리아반도의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유대 공동체는 이슬람 지배기와 기독교 왕국의 통치기를 거치며 독특한 문학, 철학, 법학, 시학을 발전시켰다.
1492년 스페인에서 유대인이 추방된 뒤 많은 세파르디 유대인은 오스만 제국,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으로 이주하였다. 포르투갈에서 강제 개종을 겪은 뒤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파르디 전통은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지중해와 중동 여러 항구 도시로 확산되었다.
세파르디 공동체의 역사적 언어로는 라디노가 잘 알려져 있다. 라디노는 중세 스페인어를 바탕으로 히브리어 문자로 기록되기도 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세파르디 전통에는 독자적인 기도서와 예배 선율, 음식 문화가 있으며, 유대 율법을 설명하는 세파르디 학자들의 권위 있는 문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미즈라히는 중동과 아시아의 유대 공동체를 가리킨다
미즈라히는 히브리어로 ‘동쪽 사람’을 뜻하는 표현에서 나온 말이다. 일반적으로 이라크, 이란, 시리아, 예멘, 쿠르디스탄, 중앙아시아 등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 오래 거주한 유대 공동체를 가리킨다. 다만 이 용어의 범위와 사용 방식은 시대와 공동체에 따라 달라진다.
미즈라히 유대인은 유럽에서 이주한 집단이 아니라 각 지역에 고대부터 이어져 온 공동체를 포함한다. 바빌로니아 유대인의 전통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대 역사와 연결되며, 예멘 유대인은 독자적인 히브리어 발음과 종교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란의 유대인은 페르시아어권 문화와 유대교 전통을 함께 간직하였고, 쿠르드 유대인은 쿠르드 지역의 언어와 생활환경 속에서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따라서 미즈라히를 하나의 동일한 문화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라크 유대인과 예멘 유대인, 이란 유대인 사이에는 음식, 음악, 의복, 발음, 가족 관습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명칭은 공통된 지리적 배경과 현대의 사회적 분류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각 공동체의 고유한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세파르디와 미즈라히는 같은 뜻이 아니다
세파르디와 미즈라히는 오늘날 자주 함께 언급되지만 본래 같은 의미가 아니다. 세파르디는 이베리아반도에서 형성된 유대 전통과 그 후손을 중심으로 하며, 미즈라히는 중동과 아시아에 오래 거주한 유대 공동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의 사회·정치적 분류에서는 두 집단이 함께 묶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유럽계 유대인과 구별되는 중동·북아프리카계 유대인을 넓게 부르는 과정에서 ‘세파르디·미즈라히’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북아프리카 유대인 가운데에도 세파르디 종교 전통을 받아들인 공동체가 있고, 미즈라히로 분류되는 공동체가 세파르디 법 전통을 따르는 경우도 있다.
아슈케나지·세파르디·미즈라히는 서로 다른 종교를 뜻하지 않는다. 지역 역사와 공동체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유대 문화권이며, 한 사람이 여러 전통의 영향을 함께 지닐 수도 있다.
예배와 율법 전통에서 나타나는 차이
유대교의 기본 계명과 성경 전통은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지만, 예배의 세부 형식은 지역에 따라 달라졌다. 기도서의 배열과 표현, 히브리어 발음, 찬송의 선율, 절기 예배의 관습에서 아슈케나지와 세파르디·미즈라히 전통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유대 율법의 적용에서도 지역별 권위가 형성되었다. 아슈케나지 공동체에서는 모세 이세를레스의 주석을 포함한 아슈케나지 법 전통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세파르디와 미즈라히 공동체에서는 요세프 카로의 슐한 아루크와 그에 대한 세파르디 법 해석이 널리 사용되었다. 실제 생활 규정은 공동체와 가정, 종교 지도자의 전통에 따라 더 세분화된다.
음식 규정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유월절에 쌀과 콩류를 먹는 문제처럼 공동체마다 관습이 다른 사례가 있으며, 이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지켜야 하는 보편 규칙이라기보다 지역별 법 해석과 관습의 차이에서 나온다. 현대의 유대인 가정은 결혼과 이주, 회당의 변화 속에서 여러 전통을 함께 실천하기도 한다.
음식과 음악은 공동체의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유대인의 음식 문화는 거주 지역의 재료와 조리법, 유대교의 음식 규정이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아슈케나지 전통의 음식에는 동유럽의 기후와 농업 환경이 반영되어 있으며, 세파르디와 미즈라히 전통의 음식에는 지중해와 중동의 향신료, 쌀, 콩류, 과일, 생선 요리가 폭넓게 나타난다.
음식은 이주와 추방의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도 한다. 스페인에서 추방된 세파르디 공동체는 새로운 지역의 식재료를 받아들이면서도 라디노 문화와 가족의 조리법을 이어갔다. 이라크, 예멘, 모로코, 이란 출신 유대인 역시 이주 이후에도 명절과 안식일 식탁을 통해 고향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였다.
음악도 공동체의 차이를 보여준다. 아슈케나지 회당의 선율은 동유럽의 음악 환경과 연결되고, 세파르디의 피유트와 노래에는 지중해와 이슬람권의 음악적 요소가 나타난다. 미즈라히 유대인의 종교 음악 역시 아랍어권과 페르시아어권, 지역 민속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유대교가 주변 문화와 단절된 채 존재했다는 생각이 실제 역사와 맞지 않음을 보여준다.
북아프리카와 에티오피아 등 다른 전통
유대 공동체의 문화적 다양성은 아슈케나지·세파르디·미즈라히라는 세 범주만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의 유대인은 북아프리카의 아랍어권과 베르베르 문화, 세파르디 난민의 영향을 함께 받았다. 이 공동체들은 서로 다른 지역적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넓은 의미에서 세파르디 전통과 연결되기도 한다.
에티오피아 유대인 공동체인 베타 이스라엘도 독자적인 역사와 종교 전통을 지닌다. 베타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다른 유대 공동체와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배와 종교 지도 체계에서 고유한 특징을 발전시켰다. 이스라엘로 이주한 뒤에는 기존의 유대교 제도와 관계를 새롭게 조정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인도, 중국, 중앙아시아에도 역사적으로 유대 공동체가 존재하였다. 이들의 규모와 역사적 연속성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유대인의 삶이 유럽과 중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대 유대인의 정체성은 여러 전통이 만나는 자리이다
20세기의 전쟁과 이주, 이스라엘 건국,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정치적 변화는 유대 공동체의 지리적 분포를 크게 바꾸었다. 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중동·북아프리카의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이 이스라엘과 북미, 유럽, 남미 등지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화적 불평등과 사회적 긴장도 발생하였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유럽계 유대인의 제도와 문화가 오랫동안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비판이 있었고, 세파르디·미즈라히 공동체는 자신들의 역사와 음악, 문학, 종교 지도자들을 재평가하며 문화적 목소리를 넓혀 왔다.
오늘날 한 유대인은 아슈케나지와 세파르디 가문 배경을 함께 지닐 수 있고, 미즈라히 음식과 세파르디 예배를 따르면서 이스라엘 현대 문화를 공유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명칭들은 사람을 고정된 상자에 넣는 분류가 아니라 가족의 기억과 공동체의 역사, 종교적 관습이 형성된 경로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편이 적절하다.
아슈케나지·세파르디·미즈라히 전통은 유대교 안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공통된 토라와 절기, 기도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각 공동체는 거주 지역의 언어와 음식, 음악, 역사적 경험을 유대인의 삶 속에 새롭게 담아냈다. 유대교를 이해하려면 하나의 규범만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러 공동체가 그 전통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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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더 읽을거리
- Jane S. Gerber, The Jews of Spain: A History of the Sephardic Experience.
- Mark R. Cohen, A History of the Jews in the Islamic World.
- Norman A. Stillman, The Jews of Arab Lands: A History and Sourc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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