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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가 가지는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
위 동전의 의미
앞면(황제 얼굴이 있는 면)
TI CAESAR DIVI AVG F AVGVSTVS
“신격화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황제”
뒷면(앉아 있는 여인)
PONTIF MAXIM
“최고 제사장”
즉 로마 황제가 정치 지도자, 군사 지도자, 종교 지도자를 모두 겸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서론
복음서에는 예수의 말씀 가운데 매우 짧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이 하나 등장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이 문장은 오랫동안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구절로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정치 권력과 신앙의 영역을 구분하는 일반적인 교훈으로 이해하기에는 그 역사적 배경이 매우 복잡하다.
이 질문이 던져진 시기는 고난주간 화요일이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함께 예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질문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 사회를 오랫동안 긴장 속에 두고 있던 정치적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로마 제국은 유대 지역을 통치하면서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인두세를 부과하였다. 그러나 유대 전통에서 인구조사는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행위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로마의 행정 인구조사와 그에 따른 세금 정책은 유대 사회 안에서 매우 큰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예수에게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글에서는 먼저 로마의 인구조사와 인두세가 유대 사회에 어떤 긴장을 만들어냈는지를 살펴보고, 이어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던진 질문이 어떠한 정치적 함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어떠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부 로마의 인구조사와 유대 사회의 긴장
1. 유대 전통에서 인구조사의 의미
유대인들에게 인구조사는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매우 신중한 행위였다. 출애굽기 30장을 보면 인구조사를 할 때 각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는 속전으로 반 세겔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것을 “생명의 속전”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수를 헤아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생명을 계산하는 행위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권력자가 마음대로 시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유대 사회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전통은 후대 유대 사회에서 성전세의 근거가 되었다. 성인 남성은 해마다 반 세겔을 성전에 바쳤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인구조사와 반 세겔은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종교적 행위였다.
2. 로마 제국의 인구조사 정책
로마 제국의 통치 방식은 전혀 달랐다. 로마는 광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철저한 행정 체계를 구축하였는데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인구조사였다. 로마가 실시한 인구조사는 사람의 수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행정적 기초 자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인구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토지세나 인두세를 부과하는 것이 로마 행정의 기본 방식이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요셉과 마리아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올라가게 된 것도 이러한 로마의 행정 인구조사 때문이었다. 제국의 행정 체계가 유대인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로마의 인구조사로 인해 유대 사회 안에서 반발심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 인구조사는 큰 충돌 없이 진행되었다.
3. 주후 6년 인구조사와 갈릴리 유다의 반란
그러나 유대 사회의 긴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후 6년이 되자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로마가 유대 지역을 직접 통치하게 되면서 새로운 인구조사가 실시되었다. 이번 인구조사의 목적은 매우 분명하였다. 세금 부과였다. 사람의 수를 조사한 뒤 그들에게 인두세를 부과하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유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미 하나님의 영역으로 이해되던 인구조사를 로마 제국이 행정적으로 실시했다는 사실도 문제였지만 그 결과로 로마 황제에게 바쳐야 할 세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은 더욱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이때 갈릴리 출신의 유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로마의 인구조사와 세금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의 주장 핵심은 분명하였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인간에게도 조공을 바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열심당 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사도행전에도 이 사건이 언급되는데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망하였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 사건을 가리킨다.
4. 인두세 문제의 등장
인구조사가 끝난 뒤 로마는 사람들에게 인두세를 부과하였다. 복음서에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질문할 때 사용된 세금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 인두세를 가리킨다. 헬라어로는 κῆνσος (kensos)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 census에서 유래한 말로 인구조사를 기반으로 부과되는 세금을 의미한다.
로마 행정 체계에서는 이 인두세를 라틴어로 tributum capitis라고 불렀다. 이것은 개인에게 부과되는 인두세를 의미하는 용어였다.
인두세를 낸다는 것은 로마 황제의 통치를 인정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유대 사회에서는 이 세금을 둘러싸고 지속적인 논쟁이 이어졌다.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금을 매우 불편하게 여겼고 일부 급진적인 집단은 세금 자체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반면 현실 정치 속에서 로마 체제와 협력하던 세력들은 이 세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인구조사와 인두세 문제는 유대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긴장과 논쟁을 낳는 정치적·종교적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지게 된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질문 뒤에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로마 통치와 유대 사회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2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던진 정치적 함정
1. 서로 다른 두 정치 세력의 등장
이러한 사회적 긴장 속에서 고난주간 화요일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함께 예수에게 나아왔다. 이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두 집단은 평소에 같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중심으로 한 종교 지도자들이었으며 로마 통치에 대해 강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로마에게 인두세를 내는 문제에 대해 상당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헤롯당은 헤롯 왕가의 정치 체제를 지지하던 세력으로 로마 제국과 협력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인두세를 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 질서의 일부였다.
서로 성향이 다른 두 집단이 함께 움직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목적이 분명했음을 보여 준다. 예수를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이었다.
2. 예수를 향한 정치적 질문
그들이 예수에게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질문은 매우 교묘한 함정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세금은 일반적인 세금이 아니라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인두세, 곧 κῆνσος였다. 이 세금을 낸다는 것은 로마 황제의 통치를 인정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면 바리새인들과 민족주의적 성향의 유대인들이 반발할 것이 분명하였다. 반대로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한다면 헤롯당이 이를 문제 삼아 로마 당국에 고발할 수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대답하든지 예수를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된 질문이었다.
3. 데나리온 동전과 예수의 질문
예수께서는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동전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로마 데나리온 은화를 가져왔다. 그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예수께서는 질문하셨다.
“이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사람들은 대답하였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로마 동전에는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고 주변에는 “티베리우스, 신적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4.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예수께서 가진 논리는 명확하였다. 가이사의 초상이 찍힌 것은 가이사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께서는 로마의 정치 권력을 절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행정 질서와 정치 권력이라는 제한된 영역을 인정하였다. 이 말씀은 로마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 권력에는 정치 권력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예수의 말씀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은 두 번째 문장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나님의 것은 무엇인가. 유대 청중들은 이 질문의 의미를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동전에 새겨진 것은 가이사의 형상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새겨진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래서 많은 신약학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가이사의 형상이 있는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인간 자신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예수의 말씀은 세금 문제를 넘어 인간의 궁극적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선언하는 말씀이었다.
처음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가?”
그러나 예수의 답변은 질문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러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순간 질문은 정치 문제에서 하나님 주권의 문제로 이동하였다. 그래서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떠나가니라.”
그들은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정치적 함정 속에 있던 질문을 더 깊은 차원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가이사의 권한이 미치는 영역이 존재한다면 하나님께 속한 영역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가이사의 영역은 제한된 영역인 반면 하나님께 속한 영역은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영역이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완벽하게 준비된 함정이었지만 예수의 한마디는 그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결론
1. 정치 권력의 영역을 인정하는 태도
예수의 말씀은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 현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으로 나오지 않았다. 동전에 찍힌 형상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그것을 가이사에게 돌려주라고 말씀하셨다. 정치 권력과 행정 질서가 현실 사회 안에서 일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신다는 의미이다.
2. 정치 권력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선언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정치 권력을 정당화하는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이어지는 문장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이 문장은 정치 권력이 가지는 영역이 제한된 영역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동전에 찍힌 형상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그것은 가이사의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찍혀 있는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 존재 전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의 말씀은 정치 권력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정치 권력이 인간 존재 전체를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의미를 가진다.
3. 인간의 궁극적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던진 질문은 세금 문제였다. 그러나 예수의 답변은 질문의 수준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처음 질문은 이것이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긴다.
“그러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인간의 궁극적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정치 권력은 인간의 삶을 일정 부분 조직하고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궁극적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4. 오늘날 적용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
이 말씀을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이해할 때 몇 가지 균형 잡힌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사회 질서와 국가 제도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태도이다. 국가의 행정 체계와 법 질서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둘째, 정치 권력의 절대화를 경계하는 태도이다. 어떤 정치 체제나 권력도 인간 존재 전체의 주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 구조이다.
셋째, 인간 존재의 궁극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동전에 찍힌 형상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그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다.
“정치 권력을 인정하되 그것을 절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인간 존재의 궁극적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