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대피라미드는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거친 돌계단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완공 당시 피라미드 전체는 정밀하게 다듬은 밝은 색 석회암 외장석으로 덮여 있었다. 햇빛을 받은 외벽은 매끈한 면을 이루었고, 사막 위에 세워진 거대한 왕실 기념물의 형태를 멀리서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외장석 대부분이 벗겨진 내부 구조다. 각 층의 석재가 계단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라미드가 원래 거칠게 쌓였기 때문이 아니라, 바깥을 감싸던 마감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피라미드의 외벽은 어떤 돌이었을까
대피라미드의 핵심은 기자 고원에서 채석한 석회암으로 쌓았다. 외부 마감에는 더 고운 품질의 투라 석회암이 사용된 것으로 이해된다. 투라는 오늘날 카이로 남쪽 나일강 동쪽 기슭에 자리한 지역으로, 고대부터 밝고 균질한 석회암 산지로 알려졌다.
채석한 돌은 피라미드의 경사면에 맞도록 가공됐다. 외장석의 바깥 면은 서로 맞물리는 접합부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듬었으며, 안쪽 면은 피라미드의 거친 핵심부에 고정될 수 있게 처리했다. 모든 외장석이 똑같은 크기였던 것은 아니다. 아래쪽의 큰 석재와 위쪽의 상대적으로 작은 석재가 피라미드의 경사를 따라 배치됐다.
외장석의 표면에는 오늘날 남아 있는 돌층의 울퉁불퉁한 면과 다른 마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대 이집트 건축에서 밝은 석재는 태양빛과 왕권의 이미지를 연결했다. 대피라미드의 매끈한 외벽도 왕의 무덤을 보호하는 구조물인 동시에, 하늘과 태양을 향해 솟은 상징적 형태를 완성하는 요소였다.
외장석은 피라미드의 모양을 완성했다
피라미드의 내부를 쌓은 뒤 외벽을 덧붙였다는 설명만으로는 외장석의 역할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외장석은 경사면의 각도와 직선, 꼭짓점의 형태를 확정하는 최종 건축재였다. 돌을 일정한 면으로 정밀하게 맞춰야 피라미드 전체가 하나의 균일한 삼각형으로 보일 수 있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별도의 마감석이 놓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 돌은 일반적으로 피라미디온이라고 부르지만, 대피라미드의 원래 꼭대기 돌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금속으로 덮였다는 이야기나 특별한 장식이 있었다는 주장은 널리 퍼져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유물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외장석은 피라미드의 경사면을 따라 운반되고 설치됐다. 완성된 뒤에는 높은 곳에서 작업한 흔적을 줄이기 위해 표면을 더 다듬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건설 방식처럼 한 번에 완벽한 외벽을 세운 것이 아니라, 내부 석재를 올리고 외벽을 맞추며 전체 형상을 완성하는 복합적인 작업이었다.
왜 대부분 사라졌을까
대피라미드의 외장석은 한 사건으로 전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재해, 구조적 손상, 채석, 건축자재 재사용이 겹치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 지진과 낙석: 이집트 북부는 지진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강한 지진은 외장석 일부를 흔들어 떨어뜨릴 수 있었다.
- 도시 건설을 위한 재사용: 떨어지거나 분리된 석재는 운반하기 쉬운 건축재가 됐다. 카이로와 주변 지역의 건축 사업에서 기자의 석재가 활용됐다는 설명이 전해진다.
- 중세 이후의 석재 수요: 이슬람 시대에 카이로가 크게 성장하면서 가공된 석회암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대피라미드의 외장석도 이런 환경에서 계속 훼손됐다.
- 장기간의 풍화: 사막의 모래바람과 기온 변화는 노출된 돌의 모서리와 표면을 서서히 마모시켰다.
1303년 이집트 일대를 강타한 지진이 외장석 손실의 원인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모든 외장석이 그때 한꺼번에 떨어졌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 외벽이 여러 세기에 걸쳐 훼손되고 반출된 결과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외장석이 언제 완전히 사라졌는지도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다.
지금도 남아 있는 외장석의 흔적
대피라미드 바닥 주변에는 원래 외벽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는 석재와 기초부 흔적이 남아 있다. 완전히 매끈한 외장면은 거의 사라졌지만, 기초를 안정시키고 경사면을 정렬한 방식은 남은 구조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정상 부근의 형태도 내부 석재가 그대로 노출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기자 지구의 다른 피라미드는 외장석의 보존 상태가 서로 다르다. 카프레 피라미드 정상에는 외장석 일부가 남아 있어, 기자 피라미드들이 완공 당시 어떤 표면을 가졌는지 짐작하게 한다. 다만 각각의 피라미드에 사용된 석재와 보존 과정이 같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거친 돌층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
현재 드러난 돌층은 피라미드가 완성되지 못한 흔적이 아니다. 대피라미드는 외장석이 사라진 뒤 핵심부의 건설 방식이 노출된 상태다. 층마다 석재의 크기와 접합 방식이 다르고, 바닥과 모서리에서는 정밀한 수평·수직 조정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대피라미드를 볼 때는 두 겹의 건축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안쪽에는 거대한 석재를 안정적으로 쌓아 올린 구조가 있고, 바깥에는 왕의 무덤을 완성된 기하학적 형태로 보이게 한 외장석이 있었다. 오늘날 남은 거친 표면은 그 외벽이 사라진 뒤 드러난 내부이며, 대피라미드의 원래 모습은 훨씬 밝고 균일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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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더 읽을거리
- Ian Shaw (ed.), The Oxford History of Ancient Egypt.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 Toby Wilkinson, The Rise and Fall of Ancient Egypt. Bloomsbur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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