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페르 토라(Sefer Torah)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오경의 히브리어 본문을 양피지에 정해진 방식으로 필사한 두루마리이다. 유대교에서 토라는 책장에 꽂힌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공동체가 읽고 배우며 삶의 기준으로 삼는 거룩한 문서로 다루어진다.
회당 예배에서 세페르 토라는 보관함에서 꺼내져 회중 앞에서 펼쳐지고, 정해진 부분이 낭독된다. 예배가 끝나면 다시 말아 천으로 감싸고 궤에 보관한다. 이 과정은 토라의 내용뿐 아니라 토라를 대하는 몸짓과 공동체의 기억까지 함께 전승하는 의례이다.

세페르 토라에 기록된 내용
세페르 토라에는 유대교 성경인 타나크의 첫 다섯 책이 기록된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이에 해당하며, 유대교 전통에서는 이 다섯 책을 토라 또는 오경이라 부른다.
여호수아기 이후의 예언서와 성문서는 세페르 토라에 포함되지 않는다. 회당에서 예언서 본문을 읽을 때 사용하는 하프타라와 토라 두루마리는 서로 다른 문서이다. 따라서 히브리 성경 전체를 한 두루마리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모세오경만을 별도의 두루마리로 만든 것이 세페르 토라이다.
필사자는 소페르이다
세페르 토라를 기록하는 전문 필사자는 소페르(sofer)라고 한다. 소페르는 히브리어 문자와 필사 규칙을 익혀야 하며, 글자의 형태와 간격, 행과 단락의 배치를 전통에 맞게 재현한다. 많은 전통적 공동체에서는 토라를 필사하는 일이 경건한 행위인 동시에 높은 수준의 전문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필사에는 일반 종이가 아니라 동물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가 사용된다. 양피지는 여러 장을 이어 붙여 긴 두루마리로 만들며, 글씨는 특별히 준비한 검은 잉크와 깃펜을 사용해 기록한다. 두루마리 양 끝에는 나무 봉인 에츠 하임이 연결되어 있어 토라를 말고 펼치는 일을 돕는다.
히브리어 본문의 특징
세페르 토라의 본문은 자음 중심의 히브리어 문자로 기록된다. 오늘날 인쇄된 히브리어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모음 기호와 성경 낭독용 억양 기호는 일반적으로 세페르 토라 본문에 적지 않는다. 낭독자는 전승된 발음과 억양을 따로 배워 글자만 있는 본문을 읽는다.
토라 본문에는 글자 사이의 간격과 문단을 나타내는 공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글자의 형태가 달라지거나 글자가 빠지면 두루마리의 정당한 사용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완성된 두루마리는 전문가가 글자를 점검한다. 공동체와 전통에 따라 세부적인 검사 방식과 허용 기준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토라 두루마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필사는 한 번에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소페르는 먼저 양피지의 상태를 확인하고, 정해진 줄과 칸을 준비한 뒤 본문을 한 글자씩 기록한다. 토라를 기록하는 동안 다른 책을 보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통적으로는 정확한 본문을 확인할 수 있는 기준본을 곁에 두고 필사한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기록할 때에는 특히 경건한 태도를 요구하는 전통이 있다. 잉크가 번졌거나 글자가 지워졌을 때 임의로 수정하지 않고, 해당 부분이 할라카의 기준에 맞는지 판단한다. 수선할 수 없는 오류가 있으면 두루마리 전체가 회당 낭독에 적합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인쇄된 성경은 개인의 학습과 연구에 널리 사용되지만, 세페르 토라는 특별한 재료와 필사 규칙에 따라 제작된 회당용 두루마리이다. 두 문서 모두 토라 본문을 담을 수 있으나, 유대교 예배에서 공식적으로 낭독되는 세페르 토라에는 별도의 형식과 관리 기준이 적용된다.
회당에서 토라를 읽는 순서
회당 예배에서 토라를 읽을 때에는 두루마리를 토라 궤에서 꺼내 회중 앞에 가져온다. 토라 궤는 세페르 토라를 보관하는 장소이며, 궤의 문과 커튼은 토라의 거룩함과 왕적인 위엄을 표현하는 요소로 이해되기도 한다.
토라 낭독에는 여러 사람이 차례로 참여한다. 토라 본문을 읽도록 불림받는 일을 알리야라고 하며, 불림받은 사람은 낭독 앞뒤에 축복을 말한다. 실제 낭독은 회당의 전통에 따라 지정된 낭독자가 맡기도 하고, 알리야를 받은 사람이 직접 읽거나 낭독자를 따라가며 읽기도 한다.
낭독자는 손가락으로 본문을 직접 짚지 않는다. 대신 야드라고 부르는 손 모양의 지시봉을 사용해 현재 읽는 위치를 표시한다. 야드는 글자를 만지지 않으면서 줄을 따라갈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낭독이 끝나면 두루마리를 들어 올려 본문을 회중에게 보이고 다시 감싼다. 이를 하그바하와 글릴라라고 한다.
두루마리를 만지지 않는 이유
세페르 토라를 직접 손으로 만지는 행위를 피하는 관습은 본문을 보호하고 토라의 거룩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손에 묻은 기름이나 습기가 양피지와 잉크를 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야드나 토라를 감싸는 천을 사용한다.
토라를 들거나 궤에서 꺼낼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일어서고, 토라가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두는 관습도 있다. 이러한 행동은 두루마리를 숭배한다는 뜻이 아니라 토라가 공동체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토라 두루마리와 유대교의 본문 전승
현재 유대교 회당에서 사용하는 세페르 토라는 마소라 전통에 이어지는 히브리어 본문을 바탕으로 한다. 마소라 전통은 본문의 자음과 철자, 낭독 방식이 안정적으로 전승되도록 여러 세대에 걸쳐 관리한 전통이다. 다만 고대에 존재했던 모든 히브리어 사본이 서로 완전히 같았던 것은 아니다.
사해 문서와 같은 고대 성경 사본은 제2성전 시대에 여러 본문 형태가 유통되었음을 보여준다. 일부 사본은 후대의 마소라 본문과 매우 가깝고, 다른 사본은 철자나 표현에서 차이를 보인다. 오늘날의 세페르 토라는 이러한 고대 본문 전체를 그대로 재현한 문서라기보다, 랍비 유대교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본문 전승을 정해진 형식으로 이어 온 결과이다.
손상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된 토라
토라 두루마리는 오래 사용하면 양피지가 닳거나 글자가 흐려질 수 있다. 수선이 가능한 손상은 전문가가 고치지만, 본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예배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 두루마리는 일반 폐기물처럼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과 토라 본문을 기록한 물건은 일정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따라 사용할 수 없게 된 두루마리나 종교 문서를 게니자라는 보관 장소에 보관하거나, 장례 의례에 준하는 방식으로 매장한다. 구체적인 절차는 공동체의 할라카 해석과 관습에 따라 다르다.
오늘날의 세페르 토라
오늘날에도 세페르 토라는 정통파 회당에서 예배와 토라 낭독의 중심에 놓인다. 보수파와 개혁파 공동체에서도 토라 두루마리를 예배에 사용하지만, 성별에 따른 역할과 낭독 참여, 복장, 의례의 세부 방식은 회당과 교단에 따라 다르다.
새로운 토라 두루마리를 완성하는 일은 한 개인의 작업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기념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글자를 쓰는 의식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거나, 후원자와 가족의 이름을 두루마리와 연결하는 관습도 있다. 이때 세페르 토라는 과거의 본문을 보존하는 물건인 동시에 현재의 공동체가 토라와 맺는 관계를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세페르 토라는 히브리어 모세오경을 기록한 두루마리이면서, 유대교의 예배와 학습, 공동체 기억을 하나로 연결하는 실물이다. 양피지 위의 글자, 소페르의 필사, 회당에서의 낭독과 보관은 토라가 문헌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 속에서 읽히고 전승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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