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소스트로토스와 ‘가바다’: 돌바닥, 왕의 게임, 그리고 예수의 재판
에체 호모 구역, 로마 시대 포장도로, 그리고 안토니아 요새가 빌라도의 관저가 아닌 이유
리소스트로토스의 의의
에체 호모 지하의 아치형 공간에는 성경, 고고학, 전승이 교차한다. 넓은 석판에는 ‘왕의 게임’이라 불리는 판이 새겨져 있는데, 요한복음 19:13의 ‘돌바닥’—헬라어 리소스트로토스(λίθόστρωτος)—와 아람어 ‘가바다’(높음·단상이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리소스트로토스’와 ‘가바다’
요한복음 19:13은 빌라도가 예수를 끌어내어 “돌바닥(리소스트로토스)이라 하는 곳, 히브리말로 가바다”에서 재판석에 앉았다고 기록한다. 헬라어 표현은 단순히 “돌로 포장된 바닥”을 뜻하는 보통명사이며, ‘가바다’는 지역적 지명으로 “높은 곳, 단상”을 의미했을 가능성이 있다. 본문은 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로마식 공적 재판에 적합한 공간을 묘사하는 것이다.
에체 호모 지하 포장도로의 실제 성격
오늘날 볼 수 있는 대형 석판은 70년 성전 파괴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도시를 알리아 카피톨리나로 재건할 때(2세기) 조성된 것이다. 고고학적으로는 스트루티온 저수지를 덮기 위해 만들어진 아치와 도로 체계에 속한다.
따라서 이 돌바닥은 예수 시대 빌라도의 재판 장소로 볼 수는 없으나, 로마식 재판 공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라 할 수 있다.
안토니아 요새와 빌라도의 관저
전통적으로 안토니아 요새가 빌라도의 법정으로 여겨졌으나, 현대 연구는 이곳이 군사 주둔지일 뿐, 공적 재판이 열릴 만한 관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안토니아 요새 소개 글 보기 (aetov.com).
대신 많은 학자들은 서쪽 언덕에 있던 헤롯궁전을 총독의 관저이자 재판 장소로 본다. 규모와 기능 면에서 총독의 공식 재판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왕의 게임’ 판: 조롱받는 왕의 즉위식
리소스트로토스에 새겨진 ‘왕의 게임’은 군사들의 오락이었으나, 죄수를 조롱하는 의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병사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겉옷을 걸치게 하며, 무릎 꿇고 “유대인의 왕”이라 외치며 조롱했다. 이는 복음서의 수난 기사(마 27:27–31; 막 15:16–20; 요 19:2–3)와 겹쳐진다.
돌 위의 게임판은 재판 장소의 증거가 아니라, 로마 병사들의 조롱과 폭력을 드러내는 상징적 흔적이다.
스트루티온 저수지와 에체 호모 아치
오늘날 이 지하 공간은 본래 개방된 저수지였던 스트루티온 풀을 덮어 만든 아치 구조물 위에 놓여 있다. 동쪽 길의 일부였던 ‘에체 호모 아치’는 하드리아누스 시대 도시 계획의 흔적이다. 이곳은 예루살렘 도시가 겪은 변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순례와 역사 연구: 두 가지 진실
전통은 이곳을 수난의 현장으로 기억하게 하지만, 고고학은 “지금 보이는 바닥은 예수 시대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두 가지는 모순되지 않고 서로 보완적인 진실이다. 순례자는 경건히 기도할 수 있고, 연구자는 역사적 층위를 구분해낼 수 있다.
현장에서 주목할 것들
- 석재: 대형 석판과 바퀴 자국, 로마 도시의 흔적
- 새김: 병사들이 새긴 게임판과 왕의 게임 흔적
- 아치: 스트루티온 풀을 덮은 로마식 토목 구조
- 아치: 동쪽 진입로의 일부였던 에체 호모 아치
자주 묻는 질문
이곳이 요한복음의 리소스트로토스인가?
아니다. 현재 보이는 포장도로는 2세기 하드리아누스 시대의 것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요한복음의 “돌바닥”을 설명하는 유사 사례로 본다.
재판은 안토니아 요새에서 열렸나?
가능성 낮다. 안토니아는 군사 요새였다. 총독 재판은 헤롯궁전이 더 적합하다.
그렇다면 왜 이곳을 방문하는가?
로마 시대 도시 흔적, 왕의 게임 흔적, 예루살렘의 재건 과정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