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의 하누카: 성전 봉헌과 빛의 절기

하누카는 예루살렘 성전의 재봉헌을 기념하는 유대교 절기이다. 히브리어 하누카(חֲנֻכָּה)는 ‘봉헌’ 또는 ‘새롭게 봉헌함’을 뜻하며, 유대력 키슬레브월 25일부터 여덟 날 동안 지킨다. 그레고리력으로는 대체로 11월 말에서 12월 말 사이에 해당하지만, 해마다 날짜가 달라진다.

이 절기는 촛불을 밝히는 모습 때문에 ‘빛의 절기’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누카의 출발점은 겨울의 빛에 관한 민속이 아니라 기원전 2세기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과 종교적 회복에 있다.

하누카가 시작된 역사적 배경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유대 지역은 헬레니즘 세계의 정치 질서 안에 들어갔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에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시리아와 유대 지역을 지배하였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헬레니즘 문화와 기존의 율법 전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둘러싼 긴장이 있었다.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통치 시기에는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교 관습에 대한 강압이 심해졌다. 유대 지역의 모든 상황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은 아니며, 유대인 사회 내부에도 헬레니즘화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다. 하지만 성전 제사의 중단과 율법 준수에 대한 억압은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왔다.

모디인 출신 제사장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은 이 저항을 이끌었다. 그 가운데 유다 마카비가 중심 지도자로 떠올랐다. ‘마카비’라는 이름의 어원과 정확한 약칭 해석에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그는 셀레우코스 군대에 맞선 무장 저항의 대표 인물로 기억된다.

성전 재봉헌과 하누카

마카비 군대는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제단을 새로 세웠다. 기원전 164년경 이루어진 이 사건이 하누카의 역사적 핵심이다. 성전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 외부 통치와 내부 갈등 속에서 훼손되고 중단되었던 예배 공간을 다시 하나님께 봉헌한 사건으로 이해된다.

하누카의 초기 기록은 유대교 경전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마카비서와 그리스어로 전해진 관련 문헌에 남아 있다. 마카비서는 성전 재봉헌을 초막절과 연결한다. 전쟁 때문에 제때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성전 회복 뒤에 여덟 날 동안 기념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하누카가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촛불 절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기 하누카의 중심은 성전 제사의 회복과 공동체의 기념 행사였다. 촛불과 기름의 기적 이야기는 후대 랍비 문헌에서 하누카의 의미를 설명하는 중요한 전승으로 발전하였다.

탈무드의 기름 이야기

바빌로니아 탈무드 샤밧 21b는 하누카의 촛불을 설명하면서 성전의 기름 이야기를 전한다. 성전을 정결하게 한 뒤 등불을 밝힐 순수한 기름을 찾았지만, 하루 동안 사용할 분량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기름이 여덟 날 동안 꺼지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이 전승은 마카비서에 기록된 군사적 승리보다 성전에서 빛이 계속된 신앙적 의미를 앞세운다. 하누카가 여덟 날인 이유를 기름의 지속과 연결하는 설명도 여기에서 널리 알려졌다. 역사적 기록과 랍비 전승은 서로 다른 시대에 형성되었으므로, 두 이야기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하나의 기록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하누카를 이해하는 두 층위
마카비서는 성전 재봉헌과 독립 투쟁의 기억을 전하고, 탈무드는 적은 양의 기름이 여덟 날 지속된 기적을 중심에 둔다. 오늘날 하누카의 의미는 이 두 전승이 겹쳐 형성되었다.

여덟 밤의 촛불

하누카의 가장 널리 알려진 실천은 하누키야라는 촛대에 촛불을 밝히는 일이다. 하누키야에는 여덟 개의 촛불 자리와 별도로 샤마시가 있다. 샤마시는 ‘섬기는 촛불’이라는 뜻으로, 다른 촛불을 밝히는 데 사용된다. 하누키야를 흔히 메노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성전의 일곱 가지 촛대와 하누카용 아홉 가지 촛대는 구별하는 것이 정확하다.

첫째 밤에는 한 개, 둘째 밤에는 두 개를 밝히며 여덟째 밤에는 여덟 개를 밝힌다. 촛불은 새로 추가되는 촛불부터 먼저 밝히는 관습이 널리 퍼져 있다. 촛불은 보통 해가 진 뒤 일정 시간 동안 볼 수 있도록 켜며, 가정과 회당의 상황에 따라 세부 관습은 달라진다.

하누카 촛불은 실내의 눈에 잘 띄는 곳이나 창가에 둔다. 이는 기적을 기억하는 일을 개인의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공동체와 이웃에게 드러내는 ‘기적의 공표’라는 생각과 관련된다. 다만 안전을 위해 불이 붙기 쉬운 물건에서 떨어뜨리고, 어린이가 촛불에 가까이 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촛불을 밝힐 때의 기도

하누카 첫날에는 촛불을 밝히기 전에 두 가지 축복을 낭송한다. 하나는 계명을 통해 촛불을 밝히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조상들에게 일어난 기적을 기억하는 내용이다. 첫날에는 하누카에 이르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셰헤헤야누 축복도 더한다.

촛불을 밝힌 뒤에는 ‘하네롯 할랄루’라는 짧은 선언문을 낭송하는 관습이 있다. 이때 촛불은 주변을 밝히는 실용적 도구가 아니라 기억과 찬양을 위한 상징으로 다루어진다. 전통적으로 하누카 촛불을 독서나 작업에 이용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회당과 가정에서 지키는 하누카

하누카 기간에는 매일의 예배에 ‘알 하니심’이라는 감사 기도문을 덧붙인다. 이 기도문은 조상 시대에 일어난 구원과 강한 자를 약한 자가 이긴 사건을 기억한다. 하누카의 승리를 군사적 힘만으로 설명하기보다 하나님이 공동체를 구원하였다는 신앙의 언어로 해석하는 기도이다.

회당에서는 하누카 촛불을 밝히고 할렐을 낭송한다. 할렐은 시편 113편부터 118편까지를 중심으로 한 찬양이며, 하누카 기간에는 매일 전체 할렐을 낭송하는 관습이 있다. 토라 낭독에서는 각 지파의 제물 봉헌을 다루는 민수기 7장이 주로 읽힌다. 성전 봉헌과 관련된 본문이기 때문이다.

하누카에는 욤 키푸르처럼 금식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중대한 행사를 피하는 관습이 일부 공동체에 있지만, 안식일처럼 모든 노동을 금지하는 절기도 아니다. 여성의 노동을 제한하는 관습도 있으나 공동체와 전통에 따라 적용 방식이 다르다.

기름 음식과 놀이 풍습

하누카에는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 라트케라는 감자전과 수프가니야라는 잼을 넣은 도넛이 대표적이다. 이 음식은 성전의 기름 이야기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으로 설명되지만, 모든 유대 공동체가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아슈케나지 공동체와 세파르디·미즈라히 공동체의 식문화에 따라 음식의 종류와 조리법이 달라진다.

어린이들은 드레이델이라는 팽이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팽이의 네 면에는 히브리어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이 글자들은 전통적으로 ‘여기에서 큰 기적이 일어났다’라는 문장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에서는 ‘여기에서’에 해당하는 글자 대신 ‘그곳에서’라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를 사용하는 형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이에게 하누카 겔트라는 동전이나 용돈을 주는 풍습도 있다. 현대에는 초콜릿 동전이나 선물로 바뀐 경우가 많다. 크리스마스와 가까운 시기에 하누카가 놓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부 유대 가정에서는 선물 문화가 강해졌지만, 하누카의 고대 기원이나 모든 유대 공동체의 전통이 선물에 중심을 두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 유대교에서 하누카의 의미

하누카는 유대교 내부에서도 여러 의미를 함께 지닌다. 성전 예배의 회복을 기억하는 절기이고, 외부 지배에 맞선 유대 공동체의 저항을 기억하는 역사적 기념일이며, 작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동시에 탈무드의 기름 이야기를 통해 어둠 속에서 지속되는 신앙과 희망을 표현하는 절기가 되었다.

정통파, 보수파, 개혁파 공동체는 모두 하누카 촛불과 관련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예배의 세부 방식과 역사 해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마카비의 군사적 승리와 민족적 독립의 의미가 강조되는 경우가 많고,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는 소수 집단의 종교적 정체성을 지키는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하누카는 성전이 다시 세워졌다는 과거의 사건만을 반복하는 절기가 아니다. 한정된 자원과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예배와 기억을 회복하려 했던 공동체의 경험을 매년 되살린다. 여덟 밤의 촛불은 성전 봉헌, 마카비 혁명, 랍비 전승의 기적 이야기를 하나의 의례 안에 함께 담아내는 유대교의 기억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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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더 읽을거리

  1. Noam Zion and Barbara Spectre, A Different Light: The Big Book of Hanukkah.
  2. D. G. Myers, Hanukkah in America: A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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