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항해 표지였다. 이 등대는 알렉산드리아 항구 앞 파로스섬에 세워져 선박이 해안과 항구의 위치를 확인하도록 도왔다. 오늘날 등대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세워진 카이트베이 요새가 고대 항만 시설의 위치를 기억하게 한다.
왜 알렉산드리아에 등대가 필요했을까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리아를 세운 뒤, 도시는 이집트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항구로 성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이집트를 다스리던 시기 알렉산드리아는 곡물, 파피루스, 유리, 직물과 같은 물자가 오가는 국제 항구가 되었다. 나일강 삼각주 서쪽 끝에 자리한 항구는 경제적으로 유리했지만, 해안 접근에는 위험도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앞바다는 얕은 수역과 암초가 섞여 있었고, 항구로 들어가는 배는 해안선과 방파제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특히 밤이나 안개가 낀 날에는 낮은 해안과 항구 입구를 구별하기 어려웠다. 높은 탑과 불빛을 갖춘 등대는 선박이 항구의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실용 시설이었다.
파로스 등대는 누가 세웠을까
등대 건설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때 시작되어 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 때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완공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3세기 초반으로 보지만, 정확한 건설 연도와 세부 공정은 고대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건축가 이름으로는 소스트라토스가 전해지며, 고대 문헌은 그를 크니도스 출신의 기술자로 소개한다.
등대의 이름은 알렉산드리아 항구 앞에 있던 파로스섬에서 유래했다. 이후 여러 언어에서 등대를 뜻하는 단어가 파로스와 연결된 것도 이 건축물이 고대 지중해에 남긴 영향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유럽 여러 언어의 ‘pharos’ 계열 표현은 등대의 어원이 되었다.
세 부분으로 나뉜 거대한 탑
고대 저자들의 기록과 후대의 묘사를 종합하면 파로스 등대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여러 층의 탑이었다. 일반적으로 다음 세 부분으로 설명된다.
- 아래쪽 사각형 기단: 바다와 바람을 견디도록 넓고 육중하게 만든 부분이다. 내부에는 계단과 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가운데 팔각형 탑: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줄어드는 구조로, 등대의 높이를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 위쪽 원형 탑과 불빛 공간: 꼭대기에서 불을 피워 야간 항해를 돕고, 그 주변에 조각상이나 장식이 놓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한 높이는 고대 기록마다 다르다. 약 100m 이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고대 단위의 환산과 기록의 과장이 섞였을 가능성이 있어 하나의 수치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기록은 등대 꼭대기에서 주변 바다를 넓게 관찰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꼭대기의 불은 어떻게 보였을까
파로스 등대의 핵심은 높은 탑과 꼭대기의 불이었다. 땔감을 태운 불빛을 반사판이나 금속 표면으로 증폭했다는 설명이 오랫동안 전해졌지만, 실제 장치의 형태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고대 지중해의 등대는 현대의 회전식 광원과 달리, 높은 위치에서 지속적으로 불을 유지하고 연기와 불빛으로 항구의 방향을 알리는 시설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
낮에는 불빛 대신 탑의 밝은 외벽과 거대한 형태가 항해 표지가 되었을 수 있다. 석재 외벽이 햇빛을 반사하도록 처리되었다는 설명도 있지만, 표면의 재료와 색채를 포함한 세부는 확정된 사실로 보기 어렵다. 확실한 점은 등대가 항구 가까이에 세워진 높은 시각 표지였다는 사실이다.
등대는 항해 시설이면서 왕조의 선언이었다
파로스 등대는 선박을 위한 시설이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권력을 드러내는 기념비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를 다스리는 그리스계 왕조가 지중해 세계에 자신들의 수도와 해상 능력을 과시한 도시였다. 항구에 우뚝 선 거대한 탑은 방문하는 선원에게 왕조의 부와 기술력을 보여주었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이나 오벨리스크가 신과 왕의 질서를 표현했다면, 파로스 등대는 항구와 무역을 장악한 왕권을 표현했다. 건축물이 제공하는 실용적 기능과 왕조의 선전 효과가 하나의 구조물에 결합된 셈이다. 등대 꼭대기에 신이나 왕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있었는지는 기록과 해석이 엇갈리므로 확정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파로스 등대는 왜 사라졌을까
등대는 수백 년 동안 지중해 항구의 상징으로 남았지만, 지진의 피해를 반복해서 입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동부의 지진대와 가까웠고, 중세에 발생한 여러 지진이 등대의 구조를 약화시켰다. 14세기 무렵에는 건축물이 크게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등대의 석재 일부는 이후 다른 건축물에 재사용되었다. 15세기 술탄 카이트베이는 알렉산드리아 방어를 위해 옛 파로스 등대 터에 요새를 세웠다. 현재의 카이트베이 요새는 파로스 등대와 같은 건물이 아니며, 고대 등대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유적도 아니다. 다만 같은 위치에 세워졌기 때문에 고대 항구의 지리적 중심을 이해하는 중요한 표지가 된다.
카이트베이 요새에서 읽는 고대 항구의 흔적
오늘날 요새를 바라볼 때는 두 시대의 역사를 구분해야 한다. 성벽과 탑, 내부 공간은 이슬람 시대의 군사 건축에 속한다. 그 아래와 주변 바다에는 파로스 등대가 자리했던 항구의 기억이 남아 있다. 해안에서 요새를 보면 이곳이 도시 안쪽의 궁전이나 신전 터가 아니라, 바다를 향해 세워진 방어 시설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항구를 통해 이집트의 농업 생산력과 지중해의 교역망을 연결했다. 파로스 등대는 그 연결망의 입구를 표시하던 건축물이었다. 등대가 사라진 뒤에도 그 위치가 요새와 항구의 역사로 이어진 까닭은 알렉산드리아의 발전이 바다와 떼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문할 때 알아둘 점
- 카이트베이 요새는 알렉산드리아 동쪽 항구 끝에 있어 해안 산책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 현재 보이는 요새를 파로스 등대의 잔존 건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고대 등대 터에 세워진 후대 건축물로 이해해야 한다.
- 등대의 정확한 높이, 꼭대기 장식, 불빛 반사 장치는 고대 기록과 고고학적 추정을 구분해 보아야 한다.
- 파로스 등대의 위치와 항구 구조를 이해하려면 알렉산드리아 해안선, 동쪽 항구, 카이트베이 요새를 함께 살피는 편이 효과적이다.
파로스 등대는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 터에 세워진 카이트베이 요새와 알렉산드리아의 항구는 이 도시가 어떻게 바다를 통해 성장했는지를 보여준다. 고대의 등대는 항해자의 길을 밝혔고, 동시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중해의 교통과 교역을 통제하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표지였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참고문헌·더 읽을거리
- Ian Shaw (ed.), The Oxford History of Ancient Egypt.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성경의 땅과 역사에 관한 더 많은 글 → 네이버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