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 시간의 결을 품은 도시
1. 왜 다마스커스인가?
다마스커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수천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사람이 살아온 공간입니다. 그 이름은 아람어 ‘다르마섹’에서 유래되었으며, “물 흐름의 땅” 또는 “평탄한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바샤르 강(또는 아바나 강)이 도심을 관통하며 물길을 제공했고, 도시 전체가 오아시스 지형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일찍이 농업, 상업,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전략적으로도 동서 교역의 교차점에 놓여, 고대 문명 간의 문화와 사상이 활발히 오가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2. 고대 다마스커스: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의 요충지
기원전 2천 년경부터 아람족이 정착하여 아람 왕국의 수도로 기능했으며, 북이스라엘과 잦은 충돌과 외교를 벌인 도시로 성경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열왕기와 이사야서에서는 이곳이 유다와 이스라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람어는 이후 신약 성경 시대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될 정도로, 다마스커스의 문화적 영향력은 컸습니다.
3.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다마스커스는 헬레니즘 문명권에 들어가게 되며, 그리스식 도시 구조가 도입됩니다. 이후 로마 제국 시기에는 더 광범위한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도로망이 정비되고, 시장과 광장, 목욕탕, 신전 등이 세워졌으며, 특히 도시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로마식 도로는 지금도 구시가지 중심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다마스커스는 로마 속주의 주요 거점 도시로 기능하며 문화와 종교가 융합된 공간이 되었습니다.
4. 이슬람 제국의 첫 수도
무함마드 사후, 우마이야 왕조가 661년에 수도를 다마스커스로 옮기면서 이 도시는 이슬람 제국의 심장으로 급부상합니다. 동서 3대륙에 이르는 제국의 통치가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지금의 우마이야 모스크는 그 시기의 가장 상징적인 유산입니다. 기독교 교회 자리에 건설된 이 모스크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겹쳐졌던 역사적 상징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시기 다마스커스는 아랍어 행정체계가 정비되고, 건축·예술·과학이 동시에 융성하던 중심지였습니다.
5. 십자군, 몽골, 오스만 시대의 격동
12세기 십자군의 위협 속에서 누르 앗딘과 살라딘은 다마스커스를 수호하며 이슬람 세계의 자존심을 지켜냈고, 몽골 제국의 팽창기에는 이 도시 역시 위협을 받았으나 파괴를 면했습니다. 16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간 뒤에는 메카 순례길의 관문 역할을 하며, 종교와 상업의 중심지로 수백 년간 안정적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의 다마스커스는 다양한 종파와 민족이 공존하던 도시였으며, 동방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공동체가 공존하는 전통도 이어졌습니다.
6. 프랑스 위임통치와 시리아 독립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시리아 지역을 위임통치하게 되면서, 다마스커스는 새로운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식민 행정에 대한 저항 운동이 도시 곳곳에서 일어났고, 1946년 시리아 독립과 함께 다마스커스는 현대 시리아의 수도로 자리매김합니다. 이 시기 많은 교육 기관, 박물관, 문화센터가 설립되었으며, 도시의 역사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기반이 다져졌습니다.
7. 오늘날의 다마스커스: 유산과 상처가 공존하는 도시
21세기 들어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지만, 다마스커스는 여전히 시리아의 수도이자 정체성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는 고대의 골목, 시장, 건축물들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며, 바샤르 강을 따라 늘어선 정원과 모스크, 교회는 지금도 수천 년 역사의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자: aetov.com | 원문 일부 출처: blog.naver.com/0216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