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기독교 카테고리에 속해 있습니다.
에베소 공의회와 신조: 그리스도의 위격과 성모 마리아의 이름
작성자: aetov.com | 원문 일부 출처: blog.naver.com/0216young
1. 공의회의 배경: 신성과 인성 사이의 긴장
431년, 소아시아의 고대 도시 에베소(현 튀르키예 셀축)에서 열린 제3차 세계 공의회는 기독론의 분기점을 형성한 회의였습니다. 이 회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위격 통일성에 대한 논쟁 속에서 진행되었고, 동시에 성모 마리아의 호칭 문제를 놓고 격렬한 신학적 충돌이 있었습니다.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에서 성부·성자·성령에 대한 교리를 정리한 후, 이제 교회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가’로 옮겨갔습니다.
2. 주요 인물과 신학적 대립
- 네스토리우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구별해 두 위격(two persons)처럼 설명했으며, 마리아를 ‘그리스도탄생자(Christotokos)’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키릴루스: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예수는 한 위격(one person)으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요한(안티오키아): 중재자적 역할을 하려 했으나, 후반에는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며 분열을 심화시켰습니다.
-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 공의회를 공식적으로 소집한 로마 황제로, 회의 결과를 정치적으로 승인했습니다.
3. 회의의 전개와 신조의 핵심
키릴루스는 회의 초반 요한이 도착하기 전에 200여 명의 감독들과 회의를 강행했고,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네스토리우스파는 ‘대항 공의회’를 열고 오히려 키릴루스를 파문하며 교회는 양분됩니다.
결국 황제는 키릴루스의 공의회를 승인했고, 이후 로마 교황 첼레스티누스 1세도 이를 지지했습니다.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신조 자체가 완전히 새로 선포되진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교리가 강조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본질상 하나님이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셨고, 한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로 불릴 수 있다.”
4. 에베소 공의회에서 채택된 신학 선언문 요약
에베소 공의회는 ‘새로운 신조’를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요지의 신학 선언문을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는 키릴루스의 제3서신을 근거로 구성된 선언문으로, 이후 정통 교리의 기준점이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으로, 두 본성이 혼합되지 않고 한 위격으로 존재한다.
-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로 불릴 수 있으며, 이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분리되거나 혼합되지 않으며, 하나의 동일한 인격 안에 결합되어 있다.
- 이러한 교리는 니케아 신조에 부합하며,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은 교회 전통에 어긋난다.
이 선언은 이후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두 본성의 일치’라는 정통 기독론으로 이어지는 신학적 기초가 됩니다.
5. 콘스탄티노플 신조와의 차이점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삼위일체 교리와 성령의 위격을 명확히 한 반면, 에베소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위격 통일성’을 강조한 것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동시에 참 인간이지만, 두 본성이 하나의 위격 안에 통합되어 있다는 점을 에베소 공의회는 분명히 하였습니다.
6. 핵심 이슈: Theotokos와 위격 통일성
‘Theotokos’(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단순히 마리아에 대한 존칭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과 위격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모두 지닌 한 인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 키릴루스 측의 주장입니다.
반대로 네스토리우스는 두 본성이 명확히 나뉘어 있어야 하며,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불려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언어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안의 인격 구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직결되는 심각한 신학적 차이였습니다.
7. 교회사에 끼친 영향
에베소 공의회 이후 네스토리우스파는 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며 독립 교회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흐름은 ‘동방교회’ 또는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로 불리며, 후에 중동과 중국에도 선교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반면, 동서 교회 안에서는 ‘한 위격 안의 두 본성’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이후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교리적으로 완성됩니다. 에베소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위격론’과 ‘마리아론’이라는 두 주제를 연결하며 기독교 신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