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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 논쟁: 사도교회로 분리되다
작성자: aetov.com | 원문 일부 출처: blog.naver.com/0216young
1. 기독론 논쟁이란 무엇인가
기독론(Christology)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이 두 본성이 하나의 인격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다루는 신학적 분야입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가 하나님이자 인간이라는 고백을 하였지만, 이를 논리적·교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는 매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다양한 입장 속에서 신학적 균형을 찾기 위해 여러 공의회를 소집하였고, 그 과정에서 각 교회 전통의 해석 차이가 서서히 드러났습니다. 특히 예수의 두 본성이 “어떻게 공존하는가”에 대한 이해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정적인 갈림길을 만들게 됩니다.
2. 칼케돈 공의회의 소집 배경
5세기 초, 에베소 공의회(431년)는 예수의 인격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 속에서, 네스토리우스의 입장(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있다는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반대로 신성과 인성이 지나치게 혼합된다는 논쟁이 등장했고, 교회는 다시금 균형을 맞추기 위한 새로운 공의회를 열게 됩니다.
451년, 동로마 황제 마르키아누스는 튀르키예 칼케돈에서 제4차 보편 공의회를 소집하였습니다. 이 회의는 교회 일치와 제국 내 통합을 목적으로 하였고, 결과적으로 예수 안에 “두 본성이 존재하며, 혼합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나뉘지도 않고, 분리되지 않는다”는 교리를 채택하게 됩니다. 이 결정은 이후 정교회와 가톨릭, 개신교의 기독론적 기준이 되지만, 여러 동방 지역 교회는 이 신조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분열이 시작됩니다.
3. 칼케돈 신조와 양성론의 핵심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각각 온전하게 존재**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두 본성은 서로 혼합되지 않으며, 각 본성이 고유한 성질을 유지한 채 하나의 인격(hypostasis) 안에 연합된다고 설명됩니다.
이 입장은 신앙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였으며, 예수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임을 동시에 고백하는 교리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칼케돈파가 인용하는 성경 구절과 해석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말씀(Logos)은 본래 신성한 존재이지만, 실제 인간 육체로 오셨음을 강조. 두 본성의 실제성을 입증하는 구절로 해석됩니다.
-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거하고 있음. 양성론의 근거 구절 중 하나입니다.
- 히브리서 4:15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 → 예수의 인성이 단지 외형적이 아니라 실제 인간성과 감정, 고통을 지닌 인성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칼케돈파는 예수의 두 본성이 각각 온전하며 하나의 인격 안에 존재한다는 점을 성경 전반에 걸쳐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4. 단성론적 입장과 아르메니아 교회의 거부
칼케돈 결정에 반대한 교회들은 예수 안의 본성이 두 개라는 설명이 결국 “예수 안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신성과 인성이 ‘나뉠 수 없는 하나의 본성’ 안에 결합되었다고 믿었으며, 이런 입장을 미아피시트(Miaphysite)라고 부릅니다.
아르메니아 교회는 506년 동방의 여러 교회들과 함께 칼케돈 결정을 공식적으로 거부하였으며, 이후 독립적인 신학 체계와 교회 구조를 형성해 나갑니다.
비칼케돈파가 인용하는 성경 구절과 해석
-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그리스도의 인격과 본질이 본래부터 하나이며, 그 안에 나눔이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합니다.
- 골로새서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이 그 안에 거하게 하시고” → 신성과 인성이 각각 분리되어 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존재 안에 융합되어 있음. 하나의 본성(Mia Physis)에 대한 근거로 사용됩니다.
- 이사야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신성과 인성의 통합을 예언한 구절로 해석됩니다. 아들이자 하나님으로서 오신 존재에 대한 예표로 봅니다.
비칼케돈파는 자신들이 ‘단성론자’라는 오해를 받는 것을 거부하며, 신성과 인성이 혼합된 것이 아니라 ‘분리될 수 없는 일치’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5. 아르메니아 교회의 독립과 전통의 형성
칼케돈 공의회 이후, 아르메니아 교회는 독자적인 노선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는 신학적 입장 차이뿐만 아니라, 제국 중심의 교회 구조에 대한 정치적 반발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당시 아르메니아는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 사이에 놓인 전략적 위치에 있었고, 로마 교회와의 결속보다는 자국 내 종교적 자율성을 유지하려는 흐름이 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칼케돈 결정 거부는 아르메니아 정체성을 지키는 신학적 선언이 되었습니다.
6.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정체성과 신학
아르메니아 교회는 ‘사도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이는 사도 바르톨로메오와 다대오가 아르메니아에 복음을 전했다는 전통에 기반한 것이며, 사도적 정통성과 고대 교회성과의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교회 예전은 독특한 아르메니아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교회 미술, 성례전, 신학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비잔틴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과 다른 독자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7. 교회사에서의 의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존재는 기독교가 단일한 문화나 조직으로만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기독론 논쟁을 통해 하나의 독립적 신학 전통을 세웠고,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 민족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칼케돈 공의회를 중심으로 한 분열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분열 중 하나이며, 이로 인해 동방 정교회, 가톨릭, 오리엔탈 정교회라는 세 갈래가 형성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그 중 하나로서, 오늘날까지도 단일한 신학 전통과 제도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 디아스포라 교회를 통해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