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충렬사

* 관람안내 *

관람료: 무료

이용시간.

4월-9월 09:00-21:00

0월-3월 09:00-20:00

단, 18:00-21:00(20:00)는 충렬사 광장 휴식동산까지만 가능

* 찾아오시는 길 *

버스.

충렬사 서원시장 정류장: 29, 42, 99, 129-1, 148, 1010(급행)

낙민역동래고등학교 정류장: 29, 31, 43, 52, 100, 144, 129-1, 148, 299, 210, 307, 1002(급행)

동래봉생병원 정류장: 36, 49, 57, 99

도시철도.

4호선 충렬사역 하차(1번출구)

2025년 1월 13일 월요일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자가용으로 안락로타리를 수없이 많이 지나다녔다. 그러나 안락로타리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충렬사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충렬사를 한번 보고자 나섰다.

주차장은 있었지만 엄청 많이 주차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길 가에 이렇게 주차하는 차량이 있길래 나도 따라서 주차했음

입구 안으로 들어서면 안내소가 있다. 안내소 앞에 충렬사를 소개한 팜플렛이 있다.

아래 설명은 안내소 앞에 비치되어 있는 팜플렛에 있는 설명을 그대로 옮겼다.

충렬사

충렬사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신 부산지역 호국선열의 영령을 모신 사당이다. 1605년(선조 38년) 동래성전투로 순절하신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동래읍성 주변의 농주산전망대에 ‘송공사’를 건립하고 매년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 오늘날 충렬사의 시작이다.

1624년(인조 2년)에는 송공사를 ‘충렬사’라는 액호로 사액하였고, 부산진성에서 순절하신 부산진첨절제사 충장공 정발 장군을 배향하였다. 1652년(효종 3년)에는 현 위치인 안락동으로 이전하면서 선열의 충절과 학생을 후세에 교육하기 위한 강학시설을 함께 갖추어 ‘충렬사 안락서원’이라 명명하였다. 안락서원은 부산 유일의 사액사원으로, 지역 사민을 대상으로 하는 고등교육과 향사를 도맡게 되었다. 한편 1709년(숙종 35년)에는 옛 송공사 터(농주산전망대)에 ‘충렬별사’를 건립, 양산군수 조영규, 동래교수 노개방, 유생 문덕겸, 양조한, 비장 송봉수와 군관 김희수, 겸인 신여로, 향리 송백, 부인 김상 등의 위패를 모셨다. 1736년(영조 12년)에는 충렬별사에 모셨던 분들을 본사인 충렬사로 합향하였으며, 충렬사 동문 밖에 열녀각과 이촌녀각을 따로 세워 송상현 공과 정발 장군을 따라 순절한 금섬, 애향, 동래성 전투에서 준절한 무명의 의녀 두 분을 각각 모시게 되었다. 36년 뒤인 1772년(영조 48년) 다대진첨절제사 윤흥신 장군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이후 충렬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시절과 기능이 쇠락하였으나 민족의 긍지를 담은 정신적 지주로 존속하였고, 이에 179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호국선열의 위업을 널리 알리고자 성역화 정비사억을 거쳐 1978년 현 시설로 재개관하였다. 95,804m2의 경역에 본전 외 15동의 건물을 갖추었으며, 부산지역에서 순절하신 선열들을 추가로 합향하여 총 93위를 봉안하였다. 매년 5월 25일에 시 주관으로 올리는 제향과 (재)충렬사안락서원에서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올리는 춘추기대제를 온 시민의 정성으로 봉행하고 있다.

1. 본전

임진왜란 때 부산지방을 지키시다가 순절하신 선열 89위(남자)를 모시고 있는 충렬사의 본당이다.

충렬사 본전

충렬사 본전 한 가운데에는 충렬공 송상현, 정발 장군, 윤흥신 장군을 위패를 모셨다.

2. 의열각

송상현 공과 정발 장군을 따라 순절한 금섬, 애향과 동래성에서 기왓장으로 왜적과 싸웠던 두 의녀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의결각

3. 정화기념비

충렬사 정화사업을 기념하여 제작한 바로 호국선열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중흥의 역사적 과역을 이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화기념비

4. 기념관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을 보여주는 6점의 기록화와 천곡수필 등 고서, 갑옷, 치제문 등의 유품 110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용맹을 떨치고 있는 정발 장군이 한 가운데 그려져 있다.

다대첨사의 갑옷

동래부사의 갑옷과 투구

동래민중본전도. 동래성 전투. 관군의 항전도 치열하였고, 민중의 저항도 처절하였다. 부녀들은 기왓장으로 싸웠다.

5. 소줄당

옛 안락서원의 교육도장으로 1652년 건립되었으나 정화 사업시 장소를 옮겨 재건립하였다.

소줄당

6. 송상현공 명언비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송상현 공의 결의와 호국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다.

송상현공 명언비

7. 동래읍성지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성을 1732년(영조7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규모를 확장하여 증축하였다. 성벽 일부와 부속건물인 동장대가 잔존한다.

동래읍 성지 성벽 일부

8. 군관청

1675년(숙종 원년) 동래부사 어진익이 중건한 군관의 집무소로 사용되던 관아 건물로 1983년 2월 경내로 이전 복원하였다.

군관청 주변 경관. 이 날은 군관청 가는 길이 진입금지여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9. 임란동래 24공신 공적비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동래지방 출신의 24별전 공신의 공적비이다.

임란동래 24공신 공적비

10. 의중지

조그마한 연못을 정화사업시 개조하였으며, 1990년 10월 20일 의중지로 명명하였다.

의중지

충렬사 입구 오른쪽에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연못 근처 휴게소가 있다.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다.

화장실이 있다.

충렬사 방문을 통해서 왜군으로부터 부산을 수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선조들의 헌신과 피가 있었음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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